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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천 애련정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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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
이천 애련정은 조선 세종 때 중건되고, 조선 세조 때 이천 부사 이세보에 의해 다시 중건된 정자이다. 정자 앞 습지에 안흥지를 파 연꽃을 심었으며, 신숙주가 '애련정'이라는 이름을 지었다. 월산대군 이정, 서거정, 조위 등 많은 시인들이 애련정의 경치를 노래했고, 임원준김안국의 애련정기와 애련루기가 전해진다. 역대 임금들이 영릉(효종) 행차길에 이천행궁에 머무르며 애련정을 둘러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,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충화사건으로 소실되었다가 1998년 이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복원되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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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천 애련정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
애련정 정보
이름애련정 (愛蓮亭)
국가이천시
유형향토유적
지정 번호15
지정일1997년 8월 1일
주소경기도 이천시 안흥동 404
수량1개소

2. 역사

이천읍지에 따르면 애련정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, 조선 세종 10년(1428년)과 세조 12년(1456년)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. 특히 세조 때 이천부사 이세보가 정자 앞 습지에 연못(안흥지)을 파고 연꽃을 심었으며, 영의정 신숙주가 '애련정'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전해진다.[1]

이후 월산대군 이정, 서거정, 조위 등 여러 문인들이 애련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를 남겼으며, 중종, 숙종, 정조 등 역대 왕들도 영릉 행차 시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.[1]

그러나 애련정은 순종 원년(1907년) 정미의병 당시, 의병을 진압하던 일본군이 이천읍내 483가구를 불태운 충화사건 때 함께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.[1]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1998년, 이천시민들의 뜻을 모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.[1]

2. 1. 건립과 중건

이천읍지에 따르면 애련정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, 조선 세종 10년(1428년)에 중건되었다. 이후 세조 12년(1456년) 당시 이천부사였던 이세보가 다시 중건하였다. 이때 이세보는 정자 앞 습지에 안흥지를 파고 그 가운데에 연꽃을 심었으며, 영의정 신숙주에게 부탁하여 '애련정'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.[1]

월산대군 이정, 서거정, 조위 등 많은 문인들이 애련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시를 남겼으며, 임원준의 애련정기와 김안국의 애련루기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.[1] 또한 중종, 숙종, 정조 등 역대 왕들이 영릉으로 행차할 때 이천행궁에 머물며 붉은 연꽃이 만발한 애련정을 둘러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.[1]

애련정은 순종 원년(1907년) 정미의병 당시, 이를 진압하던 일본군이 이천읍내 483가구를 불태운 충화사건 때 함께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.[1] 이후 이천시에서는 18만 시민의 의견을 모아 1998년에 애련정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.[1]

2. 2. 명사들의 방문과 풍류

월산대군 이정, 서거정, 조위 등 많은 시인들은 애련정의 경치를 읊은 시를 남겼고, 임원준의 애련정기와 김안국의 애련루기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.[1]

중종 23년(1528년), 숙종 14년(1688년), 정조 3년(1779년)의 기록에는 역대 임금들이 영릉 행차길에 이천행궁에 머무르며 붉은 연꽃이 어우러진 애련정을 돌아보았다고 전한다.[1]

2. 3. 왕들의 행차

중종 23년(1528), 숙종 14년(1688), 정조 3년(1779)의 기록에 따르면, 역대 조선 임금들은 영릉으로 행차하는 길에 이천행궁에 머물렀다. 이때 붉은 연꽃이 아름답게 핀 애련정을 둘러보는 것이 으레 일반적인 일정이었다고 전해진다.[1]

2. 4. 소실과 복원

순종 원년인 1907년, 전국적으로 정미의병이 거세게 일어나자 일본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천시 읍내의 가옥 483채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(충화사건). 애련정 역시 이때 함께 불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.[1]

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, 이천시에서는 18만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1998년에 애련정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.[1]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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